동거 일기: 빨래

-240611 작성

-리퀘스트(©DW님)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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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소리를 따라 뒷문을 열었더니 아실이 이불을 빨고 있었다. 허리춤에 손을 얹고서 물 먹은 천을 찰박찰박 밟는 모습이 불안정해 보였다. 에스티니앙은 얼른 다가가 양손을 내밀었다. 아실은 배시시 웃으며 위로 펼쳐진 손바닥에 자기 손을 얹었다.
빨래는 꽤 중노동이었다. 아실이 흥얼거리는 소리에 가쁜 숨이 약간씩 섞였다. 붙잡은 손에도 덩달아 힘이 들어갔다. 슬슬 교대해야겠군, 생각한 에스티니앙은 제자리에서 발을 꿈지럭거리며 샌들을 벗었다. 잘 벗겨지지 않아 다리를 털었더니 신발은 뒷마당 멀리까지 시원하게 날아갔다. 그러나 흙 묻은 발로 빨래통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발을 씻기 위해 손을 놓았다.
정작 아실은 교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에스티니앙은 애인을 굳이 밀어내지 않았다. 정 힘들어지면 맡기고 빠져나가겠지 싶었다. 둘은 아실이 부르는 유행가의 박자에 맞춰 이불을 골고루 밟았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밑에 집중하다 보니 저절로 이마가 닿았다. 그래도 이따금 발이 꼬여서 서로의 어깨를 짚고 팔을 붙잡았다. 스텝은 엉망진창이었고 노래는 어느새 멎었다. 대신에 시답잖은 농담과 킥킥 웃는 소리, 나지막한 잡담이 그 자리를 채웠다. 반쯤 내리깐 눈꺼풀이 위로 뜨이고, 청록색 눈이 선명한 장난기를 머금은 순간….

©DW님 리퀘스트

아실은 느닷없이 한 발로 이불을 박찼다. 호쾌한 반동 탓에 몸이 뒤쪽으로 기우뚱 넘어갔다. 에스티니앙은 재빨리 팔을 뻗어 아실의 허리를 감았다. 반대편 손으로는 급히 팔목을 움켜쥐었다.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그를 품에 끌어당겼다. 식은땀이 순식간에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정작 당사자는 머리 뒤쪽이 깨질 뻔했다는 사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방금은 위험했다고 인상을 썼더니,
“네가 잡아줄 건데 뭐 어때?”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에스티니앙은 어이가 없었고, 또한 뿌듯했다. 화를 좀 더 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너무 믿었다고 아실을 나무라는 것도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다행히 아실은 애인의 침묵에서 무언가 느낀 듯 곧장 사과를 건넸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미안해. 다음부턴 이런 장난 안 칠게….’ 어르는 말투라는 걸 그 자신도 느꼈는지 잘못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에스티니앙은 그쯤에서 사과를 받아주었다.
물기를 짜낸 이불을 빨랫줄에 널었을 즈음엔 둘 다 목덜미와 등이 땀으로 젖었다. 머리를 묶은 에스티니앙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아실은 자기도 묶을 걸 그랬다고 투덜거렸다. 빨래한 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그는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콧노래에 귀를 기울이던 에스티니앙은 손바닥을 위로 펼친 채 손을 내밀었다. 아실은 이유를 묻는 대신 그 손을 잡았다. 비좁은 빨래통 안에서든 단단하게 다진 흙바닥 위에서든, 춤 신청은 언제나 기꺼웠다.